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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과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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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과자와 떡을 통칭하여 '와가시(和菓子 わがし)'라 부르며 우리나라에서는 한자 표기대로 '화과자' 부른다. 화과자(和菓子 わがし)의 특징은 일본의 화려함을 품은 듯 색과 모양이 화려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과자는 첫맛은 눈으로 즐기고, 끝 맛은 혀로 즐긴다는 말이 있는데 대부분 화과자는 손으로 정교하게 만든다. 또한, 단맛이 강해 말차(抹茶 가루 녹차)와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화과자의 유입 시기

화과자(일본어: 和菓子 わがし 와가시)의 역사는 중국 불교문화의 유입과 함께 중국의 불교에서 공물로 바쳤던 당과자가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졌다. 현재 화과자(일본어: 和菓子 わがし 와가시)의 원형인 가공식품으로서의 형태는 대략 710~1333년의 시기에 모습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쌀가루나 밀가루를 반죽하여 과실이나 꽃 모양으로 만든 후 기름에 튀긴 과자가 상당량 수입되었다. 현재 에도 신에게 바치는 이 과자는 불교와 함께 그 이름이 남아 있다. 이 당나라 과자와 함께 내외의 영향을 받아가면서 일본인의 미각에 맞는 독자적인 과자가 생겨났다.

가마쿠라 시대(1185년~1333년)

가마쿠라 시대(1185년~1333년)의 점심에는 나마가시 (生菓子, 생과자) 류의 구운 만쥬나 찐빵, 면류, 월병, 요깡 등을 먹었다. 그중에서도 중국의 승려 임인이 나라에서 만든 이름을 붙인 만쥬가 유명하여 이것이 일본 각지의 만쥬로 성장하였다. 당시에는 설탕을 구할 수가 없었기 이 때문에 단맛을 내기 위해 단맛이 있는 칡 등이 사용되었다. 이때부터 와가시는 다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성장하였다. 그러나 아이츠모모야마 시대부터는 소량이나마 설탕을 과자의 원료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에도 시대에 이르러서야 설탕을 제과에 풍부하게 사용하였다.

무로마치 시대(1336년~1573년)

무로마치 시대(1336년~1573년) 후기에는 포르투갈, 스페인과의 무역이 번번하였고 그 영향으로 일본 과자 역사에 있어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동양과자의 성장과 더불어 서양과자가 전래한 것이다. 중국 당나라 과자에 의해 눈을 뜬 일본의 과자 문화가 다양한 서양과자를 만나 눈부시게 발전을 하게 된다. 선교사에 의해 다케다신죠에게 선물로 보내진 과자가 일본 최초의 금평당이라고 전해져 오고 있다. 그 후 카스테라, 보로, 금평당, 유평당 등의 서양과자는 무역항이 있는 나가사키(長崎市 ながさきし)를 중심으로 상층 계급의 사람들에게 퍼지게 되었다.
그 때까지 설탕은 대단히 소중한 귀중품으로 여겨서 조미료 대신으로 사용하지 않고 약재 대용으로만 한정적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설탕을 사용한 서양과자를 단맛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이를 대량 수입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꿀과, 칡, 엿의 단맛으로는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 이를 계기로 설탕이 압도적인 존재로서 과자의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에도 시대(1603년~1868년)

에도 시대(1603년~1868년)에 이르러 교토에서는 찻집이 본격적으로 번성하기 시작하였고 설탕이 사용이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 이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에 가까운 화과자가 등장한다. 특히 교토에서는 과자를 차 과자에 맞게 만들기 시작했고, 이 차 과자가 바로 교토 과자이다. 한편 일반적으로 문화가 개화한 에도 시대에는 서민들을 즐겁게 하는 비교적 대량 생산되는 과자가 큰 인기를 얻었다. 또한, 배절 과자 등 에도 시대의 풍습이 만들어 낸 과자도 고안되어 축복과 불행에 의미를 둔 과자가 생활 속에 만들어진 시대였다. 교토와 에도로 양분화된 일본 과자는 그 후에도 상호 특징을 지킨 채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을 계속해 나간다. 지금도 간사이 풍(오사카와 교토 지역), 간토 풍(도쿄를 중심으로 한 지역)으로 부르는 것이 남아 있으며, 이 두 지방은 고객의 기호도 다르다.

메이지 유신 시대(1868.1.3~1912.7.30)

메이지 유신 시대(1868.1.3~1912.7.30)에 들어온 서양과자와 일본 과자와의 구분을 없애는 현대 과자의 기틀을 마련했고 더욱 질 좋은 원료를 사용하여 화려한 색채와 은은한 풍미가 담긴 일본 과자를 만들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패전국이 된 일본은 전쟁의 피해로 물자부족을 고스란히 경험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화과자는 '사치품'이라는 인식이 생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 사이에서 단맛에 대한 욕구가 늘어 합성감미료를 많이 쓴 단맛의 과자가 싹 트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화과자

오늘날 화과자는 따뜻한 말차와 함께 내오는 경우가 많으며 찹쌀과 팥, 밀가루, 설탕, 한천 등을 주된 재료로 사용한다. 다도에서 차를 마실 때 함께 곁들어 먹기 이 때문에 단 것이 많고 기름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화과자는 첫맛은 눈으로, 끝 맛은 혀로 즐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시각적 즐거움도 추구하여 모양이 화려하며 색상이 다채로운 것이 많다. 예술 작품처럼 식물을 이용하여 계절감을 표현하거나, 정교하게 만들어지는 공예 과자 분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