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소비량 세계 1위' 일본의 다양한 맥주
국내 맥주 시장이 나날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은 다양한 종류의 수입 맥주를 접할 기회가 늘었다. 최근 전통 맥주에 도전장을 내밀며 '가성비 맥주'로 불리는 발포주까지 등장하며 주류 업계가 맥주 춘추전국시대를 열었다. 주류 업계에서 맥주는 크게 맥주와 발포주, 제3 맥주 등 3종류로 분류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맥주를 마시는 나라로 알려진 일본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발포주, 제3 맥주(신장르)를 제조해 왔다. 일반 맥주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는 고품질의 맥주를 가정에서도 즐길 수 있는 일본에서는 대략 200여 종의 맥주가 판매되고 있는데 어떤 종류의 맥주가 인기가 있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아사히 맥주
맥주는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주류이다. 현재 일본시장에서 판매되는 맥주 4사(社)인 아사히, 기린, 삿포로, 산토리에서 제조판매하는 제품은 총 127종에 달한다. 발포주와 제3맥주는 PB제품을 포함할 경우 200여종이 넘게 판매되고 있으며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지역과 계절에 따라 한정판으로 출시된다.
일본 맥주 업계의 혁신을 불러 일으킨 아사히부터 살펴보자. 1987년, 일본 최초으로 조잡하지 않고 깔끔함이 있는 맛 "카라쿠치 맥주(辛口ビール)"를 선보였다. 산뜻한 목넘김을 중시한 맥주로 맥주 특유의 향은 약하지만 시원한 산미가 있어 일본인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기린 맥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린 맥주는 메이지 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맥주 제조 회사이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1위를 차지했던 맥주 회사이기도 하다. 한때 일본 맥주 시장에서 6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차지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경쟁 기업 아사히에서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며 맥주 시장에 큰 지각 변동이 생겼다. 기존 맥주의 묵직함과 맥아 향의 풍미를 최소화하고 깔끔함과 청량감을 강조한 '아사히 슈퍼 드라이'를 선보인다. 은빛 메탈 디자인으로 저 맥주를 마시면 속이 시원할 것 같다는 선입견을 품게 하며, 점유율 1위였던 기린 맥주는 잠시 주춤하게 된다. 위기감을 느낀 기린 맥주는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제품을 출시하게 되는데, 이 맥주가 바로 '기린 이치방 시보리'이다. 이치방 시보리는 처음 맥아즙만 가지고 만들었다는 뜻으로, 맥주 제조 시 싹이 튼 맥아(malt 몰트)에 물을 붓고 끓인다. 보통은 이 작업을 여러 번 걸러내서 맥주를 만드는데, 한 번만 걸러내고 나머지는 버렸다는 그만큼 재료를 고급스럽게 다루었다는 의미이다. 세계의 맥주 애호가의 사랑을 받으며 당당하게 시장 점유율 1위의 왕좌를 탈환한다.
기린 맥주의 대표 상품으로는 오랫동안 제조한 '라거 맥주'와 '클래식 라거'가 있는데 둘 다 세계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치방 시보리 생맥주(1番搾り生ビール)'도 해외에서 유명한 맥주로 호프만의 씁쓸함이 입안에 남으면서 상쾌하고 깔끔한 맛을 주는 맥주라 어떤 음식과도 궁합이 좋다.
삿포로 맥주
1868년 일본의 바쿠후(幕府)가 붕괴하면서 에도시대가 끝났고, 메이지(明治) 유신과 함께 메이지 시대가 시작된다. 메이지 신정부는 홋카이도 개발을 위해 가이다쿠시(開拓使)를 파견한다. 가이다쿠시는 홋카이도 개발을 담당하는 일종의 지방 장관이었다. 그는 맥주 사업이 홋카이도의 농업과 산업에 크게 공헌할 것으로 생각해서, 국영기업으로 개척사 맥주 양조소를 건설하기로 한다. 마침 1875년 나카가와 세이베이(中川淸兵衛)가 독일에서 맥주 양조기술을 배우고 돌아왔다. 그리고 일본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던 외국인 토마스 안티셀(Tomas Anticel)이 홋카이도에서 호프(Hop)를 발견한다. 그는 홋카이도의 기후가 호프 재배와 맥주 양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1876년 홋카이도 삿포로시에 세운 양조소에서 시작해 보리와 호프 재배를 생산자와 밭에서 같이 만드는 등 원료 조달부터 열정을 쏟았다. 맥주에 대한 열정이 깃든 삿포로 맥주의 붉은 별은 홋카이도 개척사의 상징인 북극성을 나타내며 브랜드의 아이콘이 되었다.
"고르고 고른 원료만으로 맛있는 맥주를 만든다"는 브랜드 철학을 가지고 140년이 넘는 전통을 지켜온 삿포로 맥주는 저온에서 장기간 숙성시켜 상쾌한 맛과 풍미가 오래가는 맥아를 사용해 깔끔하면서도 깊이 있는 완벽한 맥주를 자랑한다. 대표 상품으로는 '삿포로 생맥주 블랙 라벨'이 있는데 삿포로 맥주의 전통과 독자적인 기술력이 결합하여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고품질의 맥주이다. 삿포로에서만 마실 수 있는 '삿포로 클래식'과 개척사 시대를 재현한 '가이타쿠시 맥주'도 있으니 홋카이도를 방문한다면 삿포로 맥주 박물관에 들러 시음해보길 바란다.
산토리 맥주
산토리 맥주는 '더 프리미엄 몰츠'로 일본 내에서 프리미엄 맥주의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고품질의 맥주이다. 최상의 아로마 호프, 니죠 보리(二条大麦), 다이아몬드 맥아, 천연수로 철저하게 엄선한 원료만을 사용한 프리미엄 맥주로 깊은 감칠맛과 화려한 향이 나는 일본 맥주 중 에비스와 더불어 최고로 손꼽힌다. 맥주의 본고장인 독일의 양조 기법을 따라 하여 맥아 100%로 만들고 있는 '몰츠'는 맥아만의 깊고 자연스러운 단맛을 느낄 수 있다. 산토리 맥주는 앞서 언급한 아사히와 기린과 다르게 100% 일본 국내 생산되며, 국제 신품 견본전인 몽드 셀렉션에서 3년 연속으로 최고급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지비루
일본은 지방마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한정적으로 제조 판매하는 지역 맥주가 있다. 그 지역의 맥주라는 뜻으로 지비루(地ビール)라 지칭한다. 규모가 작다 보니 소량으로 출시하며 특정 지역에서만 판매할 수 있어 희소성이 크다. 양조장마다 지역 고유의 개성과 특색이 담겨있어 다양한 맥주가 존재한다. 도수, 향, 맛이 천차만별이라 맥주 선택 폭도 한국 맥주 시장에 비해 넓다. 본인의 개성을 표현하고 드러나길 좋아하는 일본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발포주
주류에 붙는 세금인 주세 때문에 최근 몇 년 동안 새로운 맥주로 분류되는 '발포주'가 등장했다. 발포주(発泡酒)는 맥아 비율이 67% 미만인 일본의 술을 가리킨다. 주로 옥수수나 콩, 밀을 섞어 만들거나 아예 맥아를 전혀 넣지 않고 다른 곡물로만 만든 술을 말한다. 일반 맥주보다 맥아가 적거나 전혀 함유되어 있지 않아 더 적은 세금이 부과되므로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게다가, 맥주와 비슷한 풍미와 품질을 갖추고 있는 가성비가 우수한 술인 셈이다.
국내 주류업계에서는 이제 막 걸음을 뗀 상태라 발포주 시장의 점유율이 낮고 새로운 맥주류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크지만, 일본시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고품질의 맥주를 집에서도 즐길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혀있다.
제3 맥주
일본 맥주 시장에 후발주자로 등장한 제3 맥주는 원료인 맥아 비율이 가장 낮아 맥주의 1/3 가격이면 사 마실 수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원료인 맥아 비율에 따라 다른 세율을 적용하는 일본 주세 탓이다. 맥아를 67% 이상 사용한 일반 맥주는 350㎖ 한 캔당 77엔의 세금을 내야 한다. 반면에, 맥아 50% 미만에 소량의 주정을 섞은 제3 맥주는 28엔에 불과하다. 350㎖ 한 캔이 평균 90엔대로 일반 맥주의 절반 수준인 데다 풍미와 향이 맥주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췄기에 맥주 업계의 후발주자임에도 35%라는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맥아 함량이 적어 맥주 특유의 쓴맛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술이 약한 젊은 여성에게 인기 있는 편이며 산토리에서 나온 호로요이가 제3 맥주의 대표적인 예이다.
국내 시장에서 제3 맥주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주류의 종류가 한정적인데, 일본에서는 200여 종이 넘는 맥주가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 맥아, 숙성기간, 효모, 온도 등 다양한 제조 방법으로 이론상 수천 가지의 맥주가 탄생할 수 있지만, 한국에는 하이트, 클라우드 외에 일부 수제 맥주뿐이라 소비자로서 아쉬움이 있다. 국내 맥주보다 저렴한 가격의 수입 맥주가 잠식하는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한국 맥주 브랜드가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