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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의 채소는 안전한 것일까? 중국인 농가는 말한다

농사 Simply Wonderful. TOHOKU. 후쿠시마 토호쿠
후쿠시마의 채소는 안전한 것일까? 중국인 농가는 말한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지방의 해역에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지진에 의한 해일은 곧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성 물질의 확산을 발생시킨다. 사고로부터 7년 가까이 지나도, 여전히 인터넷상에서 때때로 놀랄만한 정보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소문의 대부분은 최종적으로 유언비어인 것으로 증명되지만, 받아들이는 쪽으로서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정말이라고 믿는 것이 손해는 보지 않는다" 라고 하는 심리가 되기 쉽다. 후쿠시마의 식품은 정말로 안전한 것일까――많은 사람이 지금도 불안을 느끼고 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지방의 해역에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지진에 의한 해일은 곧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성 물질의 확산을 발생시킨다. 사고로부터 7년 가까이 지나도, 여전히 인터넷상에서 때때로 놀랄만한 정보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소문의 대부분은 최종적으로 유언비어인 것으로 증명되지만, 받아들이는 쪽으로서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정말이라고 믿는 것이 손해는 보지 않는다" 라고 하는 심리가 되기 쉽다. 후쿠시마의 식품은 정말로 안전한 것일까――많은 사람이 지금도 불안을 느끼고 있다.

얼마 전, EU는 후쿠시마현산 쌀을 포함하여 10개 현의 농산물과 수산물의 일부 또는 전부에 대하여, 정식으로 규제를 해제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또, 미국도 9월까지 일본산 우유와 유제품에 대한 수입규제를 완화하였다. 하지만 중국, 대만, 한국 등의 아시아 국가나 지역에서는 후쿠시마현산 식품에 대해 여전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럼, 원전사고는 후쿠시마의 농업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준 것일까? 후쿠시마현산의 채소나 과일은 먹어도 무방한 것일까? 필자는 최근 후쿠시마를 방문하여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현지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중국인과 농업협동조합에 대한 취재를 진행하였다.

후쿠시마현 다테시는 인구 6만여 명의 소도시이다. 중국인 장슈아이(張帥) 씨는 15년 전부터 이 지역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3.11의 지진이 일어나기 1개월 전에 농업을 시작해, 지진 재해 이후 7년 가까이에 걸쳐 후쿠시마 농업의 부흥을 목격하고 있다.

장슈아이 씨는 1982년에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시에서 태어났다. 외조모가 일본인 중국 잔류고아였던 것에서, 2003년에 온 가족이 일본으로 건너와 후쿠시마에서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공장을 몇 군데 전전한 후, 친척의 영향으로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운 농업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2011년 2월, 즉, 동일본 대지진을 1개월 앞두고 장 씨 가족은 채소 농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설마 처음부터 곤란을 겪게 되리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했다. 농업기계와 도구를 사서 갖추고 모종을 심자마자, 세계를 뒤흔든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것이었다. 장 씨는 준비해 둔 모든 것을 놓아두고, 중국으로 피난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1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그는 수확을 기다리는 작물이 걱정되어 후쿠시마로 되돌아왔다. "농협에서 채소의 모종도 예약해 두었었고, 농업기계도 샀었습니다. 초기 투자가 컸기 때문에, 포기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농업은 후쿠시마현의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원전사고 후로는 "후쿠시마현산" 의 식품이라고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안색이 변했다. 농업을 이제 막 시작한 장 씨는 불운하게도 가장 힘든 이 시기를 경험하게 된다. 장 씨 부부는 농업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 친척에게 가르침을 청해 제로에서부터 배워, 원전에서 60km 떨어진 장소에 비닐하우스를 세운 것이었다. "여름에 10시만 되면 하우스의 온도는 40도를 넘습니다. 그러니까 매일 아침 5시 즈음에는 작업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을 해도, 처음 3년은 적자로 이윤이 없었습니다." 수년 전의 폭설 때에도, 힘들게 세운 5동의 비닐하우스가 붕괴하여 버렸다고 장 씨는 말한다.

"다행히 후쿠시마현은 농업에 대해 지원이 많아, 우리는 오늘까지 계속해 올 수 있었습니다."라고 장 씨는 말한다. "농업을 배우고 싶은 젊은이에게는, 처음 2년간 1년에 100만 엔 이상의 보조금이 나옵니다. 농업설비를 구입하는 경우에도 최대 50%의 보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닐하우스를 세우는 데 150만 엔이 듭니다만, 75만 엔의 보조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농기계 등을 살 때도 이와 같은 보조가 있습니다. 덕분에 시작 초기라도 이윤이 없어 생활이 안 되는 일은 없습니다."

"지진이 있었던 해, 시금치는 기준치를 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 폐기되어, 해당 부분은 도쿄전력에서 배상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제가 재배하고 있는 채소가 기준치를 넘은 적이 없습니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고 있기 때문에, 원전사고 영향이 적었던 것이 이유입니다. 단지, 가격만큼은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장 씨는 자신들이 키운 채소에 큰 자신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진 재해 이후 오늘까지, 수확 전과 출하 전에 모든 채소의 샘플을 농협으로 보내어 방사성 물질 검사를 받고, 합격한 경우에 한하여 농협이 구매하고 있습니다. 모든 채소를 농협이 일원화하여 구매하고 판매하기 때문에, 위험한 채소가 시장에 유입되는 경우를 원천적으로 방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지진 재해 후 2년 동안은 페트병 물을 마셨습니다만, 그 후는 쪽 수돗물을 마시고 있습니다. 평소에 먹는 야채도 우리가 만든 것입니다. 쌀도 지역의 농가에서 직접 구입합니다."

"JA후쿠시마 미래농업협동조합"에서 장 씨의 의견은 증명되었다. 조합의 다테지구 지도판매과의 스즈키 마사시(鈴木優志) 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후쿠시마현에서는 일반적인 식품 방사성 물질 검사 시스템이 확립되어 있습니다. 지역 농산물의 안전성 평가를 실시하며, 조합의 검사 데이터는 중요한 창구가 되고 있습니다. 2016년도의 경우, 2016년 3월부터 2017년 2월까지 검사센터에서 후쿠시마현 다테지구의 샘플 13,322건에 대하여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그중에는 야채, 과일, 콩류, 식용 버섯, 산나물 류, 가공품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검사 결과는 관련 웹사이트에서 조회 가능합니다. 작년에는 불합격 샘플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데이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검사센터에서 검사 프로세스에 대해 배웠다. 채소를 씻고 자른 후 방사선 측정기에 넣으면, 곧 검사 결과가 컴퓨터 상에 표시된다. 방사성 세슘의 수치가 100베크렐/kg를 넘으면 기준치 초과로 판정되어, 시장에서의 유통이 엄격하게 제한된다.

"봄부터 여름에 걸쳐, 대량의 채소를 출하하는 시기가 되면, 3명의 검사원은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스즈키 씨에 따르면, 원전사고 후 1년 내에 산나물류에서 방사성 세슘이 검출된 경우가 있었지만, 곧 해당하는 채소의 채취와 출하를 금지하여, 최근 수년은 기준치를 넘는 채소가 없다고 한다.

2016년도의 검사목록을 보면서 필자가 신경 쓰인 점은 검사 샘플에서 가장 많은 채소는 오이로 1,019건, 가장 많은 과일은 복숭아로 3,492건의 검사를 실시하였다는 것이다.

스즈키 씨에 따르면, 후쿠시마현은 오이와 복숭아의 주요 산지로, 다테지구의 복숭아 생산량은 후쿠시마현에서 최대라고 한다. 최근에는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로의 수출량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식품 외에도, 현은 아이를 중심으로 한 주민의 건강에도 크게 관심을 쏟고 있다. 후쿠시마에서는 매년 아이들의 체내 방사성 물질 검사를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근처의 일본인들도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장 씨 부부도 불안을 느끼는 일이 특별히 없다고 한다.

현재, 장 씨는 독자적인 재배기술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농업을 접한 적이 있지만, 보급된 것은 대규모 농장에서의 획일화된 관리이기 때문에, 특별히 기술적인 내용은 없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농가마다 각자 재배하고, 농가에 의해, 토지에 의해 재배방법도 관리방법도 차이가 납니다. 같은 제 토지에서도 토양의 투수성, 시비량, 온도, 통기성은 각기 다릅니다. 맨 처음 우리는 농협의 기술지도에 의지했습니다만, 최근에는 스스로 모색하고, 경험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농업을 시작했던 때에는, 농사일하고 싶어하는 청년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휴 토지가 많아, 간단히 토지를 빌릴 수 있었기 때문에, 현재에는 20무(약 13,300㎡) 정도의 토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 넓히면 어렵죠. 농업을 하고 싶은 사람은 수년 전보다도 늘어, 토지도 찾기 힘들어졌습니다"라고 장 씨는 말한다. "오이는 묘목을 심고 25일~30일이 지나면 수확할 수 있습니다. 농번기인 4월부터 10월에는 매일 잡초를 뽑고, 물과 거름을 주지 않으면 안 되고, 병충해 예방도 빠뜨릴 수 없기 때문에 하루도 쉴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너무 바빠서 손이 모자라 올해부터 두 사람에게 도움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이에 더해 농업 연수생 2명을 받으려고 합니다."

장 씨와 이야기는 나누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그의 눈에 비치는 후쿠시마가 감사, 기쁨, 그리고 희망에 가득찬 고향이라는 것이다. 갈고, 돌보고, 마침내 수확의 때를 맞는다. 2명의 아이가 있는 장 씨 가족의 생활도 활기를 띄고 있다. 이전, 장 씨 가족은 마을에서 운영하는 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올해 여름, 농지에서 차로 5분 거리에 단독주택을 구입했다. 장 씨의 영향으로 2014년에는 사촌 두 명도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를 시작했다. 지금에는 친척 중 네 가족이 후쿠시마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